절에서 스님들에게 필요한 것을 할 때는 당연히 스님들이 일을 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합니다. 초기에 절이 아직 없을 때는 주로 숲의 나무 밑에서 생활했는데, 그때는 딱히 할일 없었고, 주로 스님들의 옷을 짓는 일을 공동 작업으로 했습니다. 부처님도 역시 동참해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외진 곳에 수행하는 절이 생기고, 외진 곳이다보니 탁발을 할 수가 없어서, 자급자족했습니다. 이때는 절을 관리하는 일뿐만 아니라 농사일까지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행을 했습니다. 이때 백장 선사가 한 말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금도 울력이라고 해서 절에서 일을 합니다. 청소나 절에 딸린 밭에서 농사일을 하는 것, 절에서 맡은 소임을 하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간혹 수행의 한 방편으로 일을 시키기도 합니다. 절 이야기가 아니고 천도교 이야기입니다. 해월신사 밑에 손병희가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그런데 해월신사가 손병희에게 마당에 솥을 걸어라고 하였습니다. 손병희는 정성을 들여 돌과 진흙으로 솥을 걸 솥집을 쌓아올리고 거기에도 솥을 걸었습니다. 누가 봐도 잘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해월은 "이렇게 정성이 없어서야..."라고 하면서 발로 차서 무너뜨려버리고는 다시 쌓으라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 날씨기 진흙을 만지니 손이 정말 시렸지만, 손병희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다시 솥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아홉번을 하고 나서 해월은 "이제는 좀 쓸만 하구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손병희를 나중에 자기 후계자로 삼았으며, 그렇게 해서 손병희는 천도교 3대 교조가 되었습니다. 그 손병희가 바로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인 손병희 선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