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훈민정음 해례본’ 첫머리의 구절
나랏말쌈이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통’난
에서 쓰인 ‘듕귁(中國)’은 오늘날의 근대적 ‘중국(China)’ 개념과 다르게, 다음 세 가지 관점이 결합된 용어였습니다.
1. ‘중앙 제국(中)’으로서의 명나라
– 고대부터 ‘中國’은 중화(中華)의 약칭으로, 천하(天下) 가운데 문명·예의가 두드러진 나라를 뜻했습니다.
– 조선 초기에도 명나라는 조공·책봉 관계에서 ‘中央國’이었고, 조선은 스스로 ‘사소국(小昭國)’ 또는 ‘사대(事大)’의 위치로 인식했습니다.
2. ‘漢字·한문 전자(篆字·篆文)’를 가리키는 언어·문자적 의미
– 해례본 서문에서 ‘中國에 달아’는 ‘우리말이 한문(漢文)·중국 글자체와 달라’라는 뜻입니다.
– 당시 한문은 중국 문명권의 표준 문자였으므로, ‘中國’은 ‘한문’ 또는 ‘한자의 전통적 서체’를 가리키는 용례로도 쓰였습니다.
3. 근대적 국가명과 구별되는 전근대적 개념
– ‘中華民國’이라는 국가명은 20세기 쑨원이 내건 것이지만, ‘中國’이라는 한자어 자체는 춘추전국 시대부터 쓰여 왔습니다.
– 15세기 조선에서 ‘中國’은 ‘명나라(中)’를 지칭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문자·문화적 중심성을 상징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정리하면, 해례본의 ‘듕귁’은
지리·정치적으로는 명나라를,
언어·문자적으로는 한문·한자의 전통적 서체를,
더 넓게는 중화 문명권 전체를 가리키는 다층적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15세기 ‘中國’은 오늘날 국가 경계를 전제로 한 ‘중국’이 아니라, 『훈민정음』에서 대비되는 ‘우리말·우리 문자’와 구별되는 ‘중화 문명권의 언어·문자·정치적 중심’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